주의: 이 글은 영화 <디거>의 후기이며 해당 영화 및 언급되는 기타 다른 영화와 작품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톰 크루즈가 나오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이 감독했다는 정보 외에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이 본 영화인데 - 그래서 내 최애 잔드라 휠러가 나온다는 사실도 몰랐다 - 어떤 영화는 사전 정보없이 봐야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게 보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의 예고편과 대략적인 줄거리를 보고 간 사람들도 사전 정보 없이 보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인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이 영화의 예고편에서 보여준 톰 크루즈와 다른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었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극 중 극 <Fossil Fools>의 캐릭터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관객들은 <디거>를 보러 갔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보고 있던 작품은 <Fossil Fools>였던 셈이다. 처음에 미장센이나 연출이 너무 연극 같아서 일부러 감독이 의도한 건가 싶었는데 실제 연극이었다니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그래서 전지구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자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기득권을 비꼬는 풍자 영화가 갑자기 그 풍자 영화에 대한 영화로 방향을 틀게 된다. 물론 기득권 풍자와 조롱이 계속 큰 부분을 지탱하고는 있지만 <돈 룩 업>처럼 그게 메인인 영화는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메타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 영화는 미주알고주알 배우의 입을 통해서, 주변 여러 장치들을 통해서 너무나도 친절하게 모든 것들을 설명 혹은 변명한다. 비유니 은유니 상징이니 하는 거 없이 그냥 직설적이다. 너무 친절하고 정직해서 오히려 불편할 지경이다. 그리고 감독의 자세는 시종일관 비관적이고 시니컬하다. 사람들은 어쩌면 톰 크루즈의 필모그래피에서 <디거>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돈 룩 업>과 비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영화이다. 기득권 까고 멍청한 애국보수MAGA우파 희화화하는 블랙 코미디인 줄 알았던 영화가 어느 순간 그 비판의 과녘이 그런 ‘멍청한’ 사람들 비웃으려고 이 영화를 보러 온 (아마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이런 여러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 있다고 여겨지는, 혹은 예술에 관심있다고 생각하는) 관객에게도 향하게 된다. ‘석유 시추를 그만뒀어야 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내가 시추를 그만두길 너네도 원하지 않잖아? 결국 값싼 연료와 빠른 배송과 편리한 냉난방을 원하는 건 너희잖아!'라고. 그리고 ‘그러는 너는 뭐가 잘났냐?’라는 비난을 예상한 듯 감독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 즉 연출가로서의 자기 비판도 극 중 극을 올리려고 리허설을 하는 배우들과 제작자들의 입을 빌려 가감없이 한다.

그런 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떠오른다. 한국 영화계 3대 허언이라는 농담이 있는데

  • 1. 박찬욱 감독의 ‘이번 영화는 진짜 대중적이다’
  • 2. 홍상수 감독의 ‘올해는 좀 쉬어 가겠다’
  • 3. 이창동 감독의 ‘시나리오 다 썼다’

(개인적으로는 이창동 감독과 홍상수 감독이 좀 섞였으면 좋겠다. 무슨 말이냐면 홍상수 감독은 영화 좀 쉬엄쉬엄 만들고 이창동 감독은 영화 좀 많이 좀 찍었으면..)

그 중 하나가 간만에 이뤄진 해였고 개인적으로도 너무 너무 인상깊게 본 작품이었는데 (언젠가 <가능한 사랑>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싶다), 알다시피 이창동 감독은 꽤 오랫동안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을 했는데 여러가지 문제로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감독 본인도 이걸 극영화로 자신이 만드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오랜 의구심에 잠겨있다가 결국 시나리오를 고치고 고쳐서 완성한 게 <가능한 사랑>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해고 노동자의 삶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그의 가족과 그를 취재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감독이라는 새로운 시선이 추가된 모습을 띠게 되었다. 결국 이 영화도 극 중 극, 메타드라마 구조를 가진 액자식 구성인 셈이다.
<가능한 사랑>은 그래서 우리 사이에 (계급과 신분과 환경과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이 가능한가? 사랑이 가능하다면 그 사랑은 어떤 형태를 띠는가/띠어야 할까?를 묻는다면 <디거>는 이기적인 기득권, 한심한 권력가들을 먼 거리에서 욕하는 건 쉽지만 소비문명과 후기 자본주의가 망친 이 세상에서 당신의 책임은 없는가? 그저 비웃는 것 말고 개인이, 혹은 예술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긴 한 걸까? 하는 굉장히 자조적이고 염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능한 사랑 포스터WATCHA RATING · 직접 기록가능한 사랑★★★★½4.5

그렇기에 '모두까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쪽 깠으니 이제 저쪽도 똑같이 까서 밸런스를 맞추겠다는 1:1 맞교환식 기계적 평등 관점의 모두까기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석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으나 이냐리투를 비롯한 제작진은 그렇게 나이브하지 않다. 애초에 그랬다면 이런 영화를 이렇게 만들 생각도 안 했겠지. 여전히 보수극우 배금주의 기득권에 대한 날선 비판과 풍자가 메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들을 비판하고 비웃고 ‘풍자’하는 소위 좌파, 진보, 지식인, 예술인, 등등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실제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당신은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어쨌든 남들이 멍청한 선택할 때 나는 반대했으니 이걸로 충분한가? 누구도 이 거대한 파멸을 향해 가는 세상을 만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며 물타기하려는 '우리 안의 일베'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감독은 너무 절망적이다 못해 절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기술혁명으로 대중에게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아졌다곤 하지만 상위 0.1% 기득권과 일반 대중에게 정보가 과연 '공평'하게 공유되고 있는가? 이미 꼬일대로 꼬여버린 세상에서 일반 개인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애초에 '선택'이란 건 존재하는 건가? 아포칼립스가 도래하여 밖에 나가려면 방독면을 써야 하는 세상에서 고작 몇 시간 극장에 들어와 기득권을 ‘풍자‘하는 연극을 보며 비웃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 빼고 말이다. 그저 상대를 비웃고 우린 저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선 긋기만 한다고 세상이 달리지는가? 그렇기에 이 영화는 영화 매체에 대한 찬가이자 동시에 조롱이다. 예술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예술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복무해야 할 의무를 지니는가? 현실의 우린 <Fossil Fools> 극의 어디 지점쯤에 서 있는 것일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술조차 거대한 자본의 지원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극 중에선 ‘디거’의 조카가 극을 어렸을 때 보고 너무 좋아서 판권을 사들이고 아낌없이 지원을 해서 극을 무대에 올리는 걸로 나오는데 이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이창동 급 거물도 투자를 받지 못해 오랜 기간 영화 제작을 하지 못하다가 대자본인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고서야 <가능한 사랑>을 찍을 수 있었으니.
결국 <디거>는 현실 관객들에게 <디거> 세계 속 관객들의 <Fossil Fools>인 셈이다. 풍자를 풍자하는 또 다른 층위의 풍자.
개인적으로 <Fossil Fools>가 별도 프로덕션으로 제작되어 극으로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10000% 보러 갈 의향 있음.

이런 영화에 톰 크루즈를 -미국이 전세계 상대로 패악질하는 중에 아직도 미국첩보원(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이나 미 해군 미화(탑건 시리즈) 프랜차이즈 얼굴마담에 사이비 컬트 종교 교주나 다름없는 행보를 보이고(사이언톨로지) 본인이야말로 걸어다니는 1인 미국 대기업인 기득권 오브 기득권에 탄소배출 어마어마하게 자가용 제트 몰고 다니는 사람 - 캐스팅했다는 것, 그리고 미국에서 평가가 극도로 좋지 않다는 것까지가 이 영화의 완성인 셈.
보통 톰 크루즈하면 날아가는 비행기 붙잡고 있거나 오토바이 타고 언덕에서 떨어지는거나 초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등 극한의 액션을 스턴트 없이 직접 한다며 연기의 신이라고 하는데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 차력쇼를 보면 여태껏 보여준 역션은 연기라기보다 그냥 좀 위험한 취미생활 정도로 밖에 안 보일 정도다.
하긴, 지금이야 그가 액션 배우로만 이미지가 많이 굳어져 있지만 8-90년대만 해도 <아이즈 와이드 샷>,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매그놀리아>같은 많은 ‘예술’영화에서도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의 필모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도 PTA의 <매그놀리아>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동의할텐데, 톰 크루즈의 극 중 약 10분 간의 롱테이크 연설 씬은 아마 그의 필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들을 많이 챙겨 보진 않아서 잘 모르지만 자연스레 같은 액자식 구성을 가진 그의 2014년 작 <버드맨>이 떠올랐다. <버드맨>은 내가 처음 이냐리투라는 감독을 알게 된 작품이고 너무 흥미롭게 본 나머지 극 중에 등장하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도 찾아 읽었다. 여러모로 <디거>를 보면서 계속 생각났던 작품이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표지교보문고 · 도서 정보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레이먼드 카버ISBN 9788982817236

이러니저러니 해도 트럼프가 날뛰고 있는 MAGA의 시대에 이런 작품을 제작해서 상영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게 미국이 망했다 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아닐까하는 얄팍한 생각이 들었다(미국에 안 살아서 실제로는 어떤지 나도 모름). 물론 이냐리투 감독과 제작진의 엄청난 배짱이 필요했겠지만.
이미 평가가 다 끝난 독재자가 죽고 나서 50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도 역사왜곡이니 음모론이니 하면서 특정 영화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과 쓸데없는 논란 만들기가 진행되는 한국 상황을 보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디거 포스터WATCHA RATING · 직접 기록디거★★★★★5.0